이렇게 큰 비극이 찾아올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기에 너무나도 편하게 살아왔나 봅니다.
울산에서 태어나 활기차게 자랐던 운명의 떡고물을 넘긴 계기는요, 바로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사망 사고였습니다.
가족의 기둥이었던 아버지의 끔찍한 사망 사고
아버지께서는 어릴 적부터 가족의 기둥으로 자리잡으셨죠. 계속된 투병 생활로 건강은 안좋으셨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을 위해 해외근무를 하셨습니다. 수년간의 고단한 여정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셨죠. 여수로 이사를 오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할 거라 기대했는데... 그게 다 허사였습니다.
아버지의 안타까운 최후, 병원의 대응이 화근
아버지께서는 여수 정형외과를 방문해 진통제 주사를 맞으셨는데, 예상치 못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갑자기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왔습니다. 병원 측은 이런 긴급 상황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에피네프린 주사조차 투여하지 않았고, 아버지를 30분 동안 방치했습니다! 그 사이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등지게 됐습니다.
어머니 마저 떠나가며 가족에 더 큰 슬픔 안겨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슬픔은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불가항력적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자책과 죄책감에 시달리셨습니다. 또한 병원 측의 부적절한 대응과 회피에 대한 분노심도 컸죠.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견디기에는 한계가 있었나 봅니다. 어머니 또한 결국 극심한 슬픔 속에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하루 아침에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어야 했습니다. 그 충격과 상실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컸죠. 지금도 그때의 아픔이 머리를 스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슬픈 현실 속에서 조금씩 버팀
부모님의 물건을 정리하며 그분들의 체취를 간직하려 애썼지만, 그 허전함과 그리움은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죽기 전에 남긴 죄책감에 찬 편지들을 보면 눈물만 핑 돌았습니다.
가족에게 남은 숙제, 의료진의 부적절한 대응에 대한 질문
사건 발생 당시만 해도 병원 측의 대응에 의문을 품었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진상 파악에 나섰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병원 측은 회피와 은폐로 일관했고, 오히려 저희 가족이 경찰에 신고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병원이 보였던 무책임한 태도와 불성실한 응급 대응이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진 게 분명합니다. 이 사실에 대한 진상 규명과 의료진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겠죠?
부모님을 잃은 슬픔, 가족애로 극복하며 전진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서서히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부모님의 그리움은 남아있지만, 지나간 일을 되새기며 자책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처럼,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이해하며 가족애를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비록 피해는 크지만, 이 경험을 통해 우리 가족은 한층 더 단단해졌습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과 아쉬움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 가족 또한 미래를 향해 전진할 차례입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딛고 일어설 때, 그래야만 부모님의 뜻을 기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요?